대한 임시정부의 김창수에서 김구가 되기까지,. 대장 김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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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보훈방송
기사입력 2017-11-04 [13:45]

 

 

 

'대장 김창수'는 청년 김창수가 인천 감옥소의 고통 받는 조선인들 사이에서 모두의 대장이 돼가는 이야기로 백범 김구의 청년 시절을 그린 감동 실화. 고통과 절망 속에서 처절하게 감옥소 생활을 하는 죄수들의 모습은 온데 간 데 없이 스틸 속 배우들은 촬영 중간 서로 장난을 치며 웃음으로 촬영장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대장 김창수’는 치기 어렸던 청년 김창수가 인천 감옥소의 고통 받는 조선인들 사이에서 모두의 대장이 되어가는 이야기로 백범 김구의 청년 시절을 그린 감동 실화. 인천 감옥소에 수감된 ‘김창수’는 자신은 다른 죄수들과 다르다며 그들을 외면한다. 그런 그를 처음부터 따뜻하게 품어주던 ‘고 진사’는 감옥소 운동장에 핀 들꽃 한 송이를 보고 “이 들꽃이 무슨 죄를 지어서 감옥 안에 피었겠나. 여기 있는 사람들도 이 들꽃하고 다를 바가 없다네”라며 죄 없이도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고 있는 죄수들의 현실을 이야기한다. 이어 “안에 핀 꽃이나 밖에 핀 꽃이나 다 같은 꽃인 게야”라고 들꽃에 인천 감옥소의 죄수들을 투영해 뼈 있는 한 마디를 전한다. ‘고 진사’의 이 한 마디는 청년 ‘김창수’에게 깨달음을 선사함과 동시에 관객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으며 명대사로 꼽히고 있다.

둘. ‘강형식’의 말에 응수하는 ‘김창수’의 한 마디!

‘고 진사’의 한 마디에 자신이 가야 할 길을 깨달은 ‘김창수’는 감옥소에 수감된 죄수들을 깨우치기 위해 직접 한글을 가르치게 된다. 그의 그런 행동이 탐탁지 않은 감옥소장 ‘강형식’은 날로 ‘김창수’를 핍박하고 한겨울 언 땅에 깊게 파인 벌 방에 그를 가두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점점 더 악랄하게 ‘김창수’를 괴롭히던 ‘강형식’은 그를 비아냥대며 “그런다고 안 바뀐다. 이 나라가 그래. 그냥 다른 놈들처럼 타고난 대로 살다가 죽어”라고 말한다. 그런 ‘강형식’을 향해 ‘김창수’는 “할 수 있어서 하는 게 아니다. 해야 해서 하는 거다”라고 응수한다. 청년에서 대장으로 변해가는 ‘김창수’의 묵직한 내면을 가장 잘 투영한 이 한 마디는 배우 조진웅도 가슴에 남는 대사로 꼽은 바 있다. 

셋. 인천 감옥소 죄수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외치던 한 마디!

‘강형식’은 자신의 사리사욕을 챙기려 죄수들을 일본의 철도 노역에 강제 동원한다. 어느 날 노역 현장에서 참담한 사고가 발생하고 죄수 여럿이 죽게 된다. 아무런 죄책감 없이 죄수들의 시신을 감옥소 밖으로 버리려는 간수를 향해 ‘김창수’는 고목처럼 단단히 자세를 잡고 “못나갑니다. 오늘 여기 시신들 한 발짝도 못나갑니다!”라고 외친다. 그의 목소리를 시작으로 죄수들은 서로의 팔을 겹쳐 잡고 한 마음 한 목소리로 “못나갑니다!”라고 외치며 간수들과 팽팽하게 대립한다. 함께한 죄수들을 식구처럼 여기던 ‘김창수’의 마음과 죄수들이 하나되어 불의에 맞서는 이 장면은 관객들에게 큰 울림을 전하며 명장면, 명대사로 꼽히고 있다.

수많은 명대사를 남기며 관객들의 마음에 깊이 자리한 감동 실화 ‘대장 김창수’는 전국 극장을 비롯해 IPTV, 포털, 모바일 등 VOD 서비스를 통해 안방 극장에서도 만날 수 있다.

영화의 마지막, 김창수가 김구가 되어 백두대간을 바라보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도 그는 가슴에 담아 두었다. 이 눈부신 나라가 누군가 자신을 던져 지켜낸 나라라는 걸 잊지 말자는 다짐이었다. 그때 썼던 그 안경은 지금도 조진웅과 함께 있다. ‘할배’의 한 조각을 간직하고 싶어 소품팀에 부탁했다고 한다. 그는 이제 김구 선생의 안경으로 세상을 본다. 감옥에는 이름이 없다. 수인번호만 존재한다. 이름은 인간만 가질 수 있다. 시간도 그렇다. 죄수에겐 시간을 마음껏 쓸 자유가 없다.

소설 '대장 김창수'에서 작가 이원태, 김탁환은 죄수를 이렇게 표현한다. 간수 이영달을 빌려 "아비가 종이었든 양반이었든 감옥소에선 쓸데없다. 오늘부터 짐승이 되었고 영영 짐승으로 살다가 뒈진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이라고. 1890년대 후반 감옥에서는 인간이 아닌 짐승 취급을 받았다.

처음부터 등장하는 감옥은 소설의 주요 무대다. 우리가 잘 아는 독립운동가 백범 김구 선생이 청년 시절, 그가 김창수이던 때 감옥에 갇혀 범인에서 위인으로 탄생하는 과정을 그렸다.

수감번호 413. 감옥에서 그는 이렇게 불렸다. 그는 감옥소 '구(九)'호실에 들어간다. 처음에는 간수 이영달에 살이 찢어져라 맞았다. 다른 죄수들에게도 구타를 당한다. 꼿꼿한 성정은 매를 더 불렀다. 감옥에서는 감옥소장, 간수들이 곧 법이었고 폭행이 횡행했다.

413이 당당했던 이유는 죄가 없다 여겼기 때문이다. 1896년 3월9일 만 스무살이 채 되지 않은 동학 접주로, 의병장으로 활약한 청년 김창수는 황해도 안악 바닷가에 있는 치하포 객주에서 일본인 쓰치다 조스케를 죽였다. 그리고 "국모보수(國母報讐)의 목적으로 이 왜인을 죽이노라"고 포고문을 썼다. 주소도 남겼다.

"나 김창수는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왜인을 죽인 것이 아니오. 조선의 수치를 씻기 위해 왜인을 죽였소. 국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방방곡곡에서 일어난 의병을 떠올려 보시오. 나는 옳은 일을 했고 죄가 없으니 달아나지 않고 내 집에서 기다린 것이오."

그가 죽인 왜인이 명성황후를 죽였다는 직접적 증거는 없었다. 그러나 그는 굳이 변장할 필요가 없는 곳에서 조선인처럼 변장하고 칼까지 감추고 있던 그를 국모를 살해한 공범, 또는 국가와 민족의 독버섯이라 생각했다.

감옥에 가 고통을 받던 그에게 비수 같은 깨달음의 순간이 찾아온다. "투견처럼 살지 마라. 사람이 사람을 무는 법은 없어. 사람 대접을 해 줘라. 네가 그들을 간수의 개로 취급하면 너도 똑같이 개 취급을 받을 뿐이야. 아기 접주 김창수가 어떻게 교세를 넓혔는지 잊지 마. 황해도에서 한 일을 감옥에선 왜 못할까?" 

이후 그는 사람을 하늘같이 받들겠다는 신념을 굳히고 실천에 나선다. 감옥 사람들에 동화되고 그들의 이야기도 들어준다. 억울한 사연을 담아 '대서'로 무죄 판결도 받아낸다. 죄수들은 어느새 김창수 편에 서게 된다. 감옥을 학교로 만드는 변화도 이끈다.

그는 사형수였다. "조선인이 나라를 위해 전쟁터에서 적군을 죽인 것인데 그게 죄가 되느냐"는 그였지만 나라는 그를 지켜주지 못했다. 사형장까지 끌려갔다가 집행되기 직전 사형을 중지하라는 고종의 어보가 날아들어 목숨을 부지하고 미결수로 감옥 생활을 하게 됐다. 감옥에서 그는 외국의 일을 보며 새 사상을 접하기도 한다. 프랑스 혁명을 다룬 '태서신사'를 읽은 그의 생각은 하염없이 번져 나간다.

"나라마다 왕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며, 있는 경우에도 그 지위가 다양하고 왕이라고 해도 법을 어기고 민심을 어지럽히면 극단적인 경우엔 목숨까지 잃는다고 지적한 것이다. 조선의 왕 역시 절대적이지 않다면?" 

'백범일지'를 엮은 역사학자 도진순 창원대 교수는 '치하포 사건'을 백범 김구의 제 1의 '역사적 찰나'라고 규정했다. "청년 김창수는 이 사건으로 고종의 주목을 받는 스타 죄수가 되기도 하였지만 근 2년간의 감옥살이, 사형 문턱에서의 집행 정지, 탈옥, 승려ㆍ기독교인으로의 변신 등 파란만장한 시련기를 거치면서 사회적으로 다시 태어난다."

소설은 실화를 바탕으로 쓰였다. 1898년 3월 23세의 김창수는 탈옥해 신분을 감추고 살면서 1900년에 김구(金龜), 1912년에는 지금의 이름 김구(金九)로 개명했다. 역사적 찰나가 작가의 상상력과 문장력으로 생동감 있게 다가온다. 최근 개봉한 동명의 영화에서는 감옥소장 강형식이 주요 인물이다. 반면 책에서는 간수 이영달이 이야기를 풀어내는 핵심 인물이다. 영화와 비교해가며 읽는 묘미도 있다.

“김구 선생님의 삶은 직구예요. 변화구가 없어요. 아플 줄 알면서, 맞을 줄 알면서 가요. 그래도 또 던져요. 한 시절 그렇게 살아보니, 마음이 떳떳해요. 저도 이제 그렇게 가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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